[내외뉴스통신] 정이 이 대 희

(영상=김현우 기자)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압박감이 몰아친다. 

혁명 거사 계획을 짜고, 동지를 규합한 뒤, 마침내 군사 혁명을 시도하여 완성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제는 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좌우를 돌아보지만 전혀 빈틈이 보이질 않는다. 조금도 여유가 없다.

5월 15일, 혁명군을 이끌기 위해 급하게 집을 나온 뒤 여태 내자에게 전화 한 번 하지를 못하고 있다. 사무실 야전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며칠째 군화도 제대로 벗어 보지를 못했었다. 어제 비로서 영수가 보내온 내복을 받아 갈아 입었다.  

(사진출처=국가기록원)
(사진출처=국가기록원)

긴박하게 돌아 가는 혁명 전선이 벌써 일주일 째 이어지고 있다. 최고회의를 구성하고 위원별로, 위원회별로 업무 분담을 꾀하였다. 내각을 구성하고 각급 기관장을 임명하여 역량껏 혁명 과업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다. 

모두가 책임감 있게 맡은 바 일에 열심이다. 충성심 강하고, 열정적이며, 업무 추진력이 대단하다. 6.25 전쟁에서 고지 점령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돌격 앞으로’ 외치던 그 때처럼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 하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매진하고 있는 마당에, ‘내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회의실에서는 물론, 사무실에 홀로 가만히 앉아 있는 상황에서도 ‘머리가 터질 듯’ 생각하고 판단할 일이 폭주하고 있다. 모든 분야, 위원회, 부처, 기관의 일이 내게로 집중되고 있다. 군사 혁명을 총지휘한 원죄(原罪 ?) 때문에 모든 사항에 대한 최종 결재를 내가 감당해야만 한다. 

혁명을 함께 하고, 지금 혁명 과업 수행의 최전선에 나서 있는 모든 현역 군인들은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일에 맞닥뜨려 있다. 간혹 스스로 원해서 일을 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대부분은 내가 일방적으로 등을 떠밀어서 맡긴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아는 것보다도,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권한은 주어졌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 줄 알지 못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정치나 행정이나, 장관이나 도지사나, 기업인이나 교수나 선생님 노릇이 그렇게 쉽다면, 현역 군인들이 나설 게 뭐 있었겠나? 그냥 놔 둬도 잘 되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혁명 동지들, 대다수 군인들이 ‘뭐가 뭔 지 모르고 당황해하거나, 멋 모르고 설치고 있을 수 있다.’

생각하면 할 수록, ‘긴장해야 한다. 긴장하라!’ 나를 몰아친다. 

전방 7사단장 시절에 가까이 접했던 70 후반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시고는 내게 푸념을 한 적이 있었다. 

“장군님, 자식들이 내게 왜 이럽니까? 나를 가만 두지를 않네요.”:

무슨 소리인가 자근자근 들어 보았더니 알 만했다. 이 할머니는 치매기도 조금 있었고, 일을 많이 해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를 못하고 운신(運身)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옆에서 보살펴야만 일상 생활이 가능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떴다. 장례를 치르고 난 그 직후부터 할머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객지로 나가 살던 일곱 자식들이 모두 자기에게 다가와서는 ‘오늘은 무엇을 드셨냐?’ ‘몸은 어떠시냐?’ ‘토지세는 어떻게 하실 거냐?’ ‘안골 큰 밭뙈기에는 무슨 작물을 심을 거냐? ’ ‘그 땅은 누구에게 줄거냐?’

‘그동안 지네들 사느라고 나를 본체 만체도 안 하던 것들이, 왜 갑자기 내게 관심이 많아진걸까?’ 

면서기도 나타나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망 신고 하셔야죠?’ 하고, 동내 이장도 매일 찾아와서는 ‘동네 천렵 추렴을 하려고 하는데 참가하실 거죠?’ 묻는다.

모든 것을 할아버지가 처리해 주었었는데 이제는 혼자 감당하란다. 할머니는 “내가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아요. 나 빨리 죽으라고 하는 것 같네요.” 하소연한다.

지금 내가 바로 그런 신세가 되었다. 

장 면 총리를 면직시키고, 윤 보선 대통령을 뒷방으로 몰아냈다. 국회의원 모두를 감금해서 재갈을 물리고 정부부처 모든 장관, 시장과 군수, 기업체 사장들을 쫓아 내거나 족쇄를 채웠다. 쫓겨난 그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면서 외치는 것 같다.

“그래, 그 잘난 네가 한번 다 해봐라.”

갑자기 겁이 덜컥 난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스스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혁명을 통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국가 발전에 관한 일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해내야만 한다. 국가 발전의 장단기 전략을 세워 차근차근 추진해 가야 한다. 아니다.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처리해가야만 한다. 

모두가 나 만을 쳐다보고 있다. 아니, 모든 것을 내가 앞장 서서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세워 조율해 가야 한다. 자칫 어느 한 곳이라도 삐끗하거나 누구 하나라도 엉뚱한 짓거리를 하면 큰 일 난다. 혁명 직전 민주당 정부보다도 못한 상황이 전개되어서는 안 된다.  

군 생활 중 특정 목표나 전략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가는 일은 사실 내가 가장 자신하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군사 분야가 아니라 국가 전체와 관련된 업무다. 젊은 혈기에 일단 군사 혁명을 하기는 했지만 정치, 행정, 경제, 농업, 공업, 교육, 사회 복지 어느 하나도 만만한 게 없다. 온 정성을 다해 전력 투구해야만 어느 한 영역이라도 따라잡을까 말까 한다.

자, 어쩔 것인가?

그냥 장 도영 의장에게 떠넘기고, 영관급 팔팔한 젊은이들에게 맡겨 버리면 어떨까? 나는 그저 뒷짐지고 생색이나 내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어떨까?

아버님께서 그러셨듯, ‘속으로만 썩어 문드러지는’ 소극적 성격이 다시 도지는가? 사령관이 되어 도전적으로 장병들 앞에 나서기 전까지는 언제나 남 앞에만 서면 쪼그라들었다. 어제 오늘만 해도 육사 생도들의 거리 행진을 바라보면서 남에게 감정을 들킬까 염려되어 검정 라이방을 껴야만 했다.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조금만 흥분되어도 가슴이 벌떡거리고 얼굴에 감정이 드러난다. 호불호나 화, 분노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얼굴로 몸짓으로 드러나는 소심한 순진형 인간이 바로 나다. 

이 타관 상사로 하여금 차를 대라고 해서 올라타고 한강변을 무작정 달리게 했다. 남한강을 따라서 양평까지 시원하게 달렸다. 짙푸른 초여름의 신선함이 얼굴을 때린다. 가슴 속의 불, 불안한 감정이 조금은 사그러드는 듯했다.  

오늘은 만사 제끼고 신당동 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부인 영수의 얼굴을 보면서 편안해진다. 아이들도 가까이 다가와 아는 체를 하면서 안긴다. 가족의 편안함이 이런 것이구나 느껴진다.

국가 발전 전략을 짜야만 한다. 일단 큰 골격으로 방향 설정을 하고 목표를 세워 보기로 한다.

- 정치판: 일단 모든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규제하고, 좌파식 분열주의자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근본적으로 해가 되는 인사는 당분간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 혁명 정부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이 되면 헌법 정신에 따른 자유 민주 정치를 곧바로 허용해야 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 농촌 빈곤 해결: 1950년 전쟁 직전 실시한 농지 분배로 인해 전국의 농민들이 모두 자기 땅을 가졌다. 하지만 농토가 적어서 아무리 열심히 농사일을 하더라도 입에 풀칠하기가 쉽지 않다. 농업 생산량을 늘리는 일이 급선무다.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집집마다 소 한 마리씩은 보급해야 하겠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거의 모든 소나 돼지가 사라졌다. 미국 원조 물자로 가축을 받아서 증식하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영농 기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가야 한다. 농촌 인구를 줄이는 방법이 최선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유휴 노동력을 도시의 공장으로 뽑아 내야 한다.

농업은 항시 모자란다. 보리고개를 넘기려면 사정이 조금 나은 이웃으로부터 빚을 내야 한다. 매년 싸인 빚이 고리대가 되어 수많은 농민을 옥죄고 있다. 아직도 농지 상환금을 다 갚지 못한 농가가 태반이다. 농어촌 고리대와 밀린 토지 상환금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만 한다. 

- 실업자 구제: 민주당 정부에서도 실업자 구제, 농촌 소득 증대를 위해 국토개발사업을 벌렸다. 하지만 재정이 빈약한 상태에서 추진되는 국토 개발 사업이나 농촌 소득 증대는 한계가 있다. 공장을 만들어 제품을 생산해서, 외국으로 수출을 하도록 해야 한다. 수천년 대한민국은 농업에만 매달려 왔다. 농업 생산량이 일정 수준으로 한계 지워져 있는 상태에서 국민의 빈곤은 대를 이어 오늘날에 이르르고 있다. 공산품 생산과 수출, 무역 증대가 우리의 갈 길이다.  

- 경제 발전: 혁명 후, 한국은행 금고를 보니 너무나 돈이 없다. 국가 재정의 50% 내외를 미국 등 선진국의 원조 물자로 채우고 있는 상태다. 이 승만 자유당 정부, 장 면 민주당 정부를 그토록 무능력하다고 비난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 한국의 현실은 가난하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일단 투자할 돈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부정축재자들의 재산을 몰수한다. 정부의 모든 지출을 줄이고 절약해서 투자 자금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 애걸복걸하더라도 원조나 차관을 늘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도 협상을 통해 손해 배상금을 받아내고 필요할 경우에는 원조 차관을 빌려야 한다.  

- 공업화: 일단 일본이나 미국 등으로부터 수입되는 생활 필수품을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충당해야 한다.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수입 대체를 하면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석탄이나 중석 등 광물질 생산과 수출도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가공하여 질 좋은 공산품을 만들어야 한다. 공업화를 통해 실업자를 구제하고, 국민 소득 증대를 꾀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수출 증대를 꾀해야 한다. 공업화를 위해서는 우수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문 기술자, 과학자 육성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행정: 구태의연한 유교식 행정이나 일제의 수탈 행정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능률성과 효과성을 최대로 하는 행정 관리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에서 능률 행정을 배운 젊은 군 장교들을 행정 현장에 파견하여 모든 정책 과정과 행정 관리를 현대화해야 한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유교식 행정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피지배 계급으로서, 수탈을 받는 입장에서 어거지로 순종하던 일제 시대의 피동적 행정 방식도 사라져야 한다. 직위 분류제를 시행하여 직무와 직책이 일치하게끔 만들고, 책임 행정을 구현케 해야만 한다. 얼렁뚱땅식의 행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행정 운영 절차를 만들어 예측 가능한 행정을 펼쳐야 한다.

- 부정 부패 일소: 지난 민주당 정부까지의 대한민국은 철저히 부패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영역에서 곪을 대로 곪아 있다. 법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원칙도 없다. 누구 하나 바로잡으려고 나서질 않고 있다. 그저 ‘관행’이 최고로 여겨져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부정축재자 검거, 부정 행위자 체포로부터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려고 한다. 이미 깡패 소탕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로 책임을 맡아 부임한 군 장교들에게 신신당부하여 이권에 개입하지 말고 부정 청탁을 들어주지 말라고 단속을 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정 행위를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 반공, 김일성 공산당 척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을 추종하는 공산당, 좌파 세력을 척결해야만 한다. 공산주의는 교묘한 언변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의 낙오자,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람, 노동자, 가난한 농민, 불만 세력을 충동질하고 자극한다. 물질적으로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말로만 자극을 하여 화를 내게 만든다. 해방 후 좌익 게릴라, 빨치산들, 6.25 전쟁을 거치면서 공산당은 우리의 최대 위험한 적임이 밝혀 졌다. 민주당 정부가 무너진 것은 바로 좌파 불순분자, 공산당 사주 때문이다. 북한 김일성이 존재하는 한 항상 우리를 교란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현재는 우리보다 조금 더 잘 산다고 기고만장해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지유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어렵다. 태생적으로 공산주의 집단 경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생각이 공산당 김일성에까지 이르르고 보니 퍼뜩 김 종필 중령이 추진하고 있는 중앙정보부 창설 과정이 궁금해졌다. 중앙정보부는 공산당 척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전쟁 전후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부정축재자 검거나 깡패 소탕은 물론 경제 개발 전략 수립이나 외국의 정치 행정, 경제 발전 정보 수집까지 전방위적으로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김 종필 중령을 호출했다.  

“김 중령, 어떻게 되어 가나?” 

“예, 각하. 8기 동기생 중심으로 중앙정보부 창설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최 영택, 서 정순, 이 영근, 고 제훈, 석 정선 등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도 아는 인물들입니다.”

“그래, 아는 사람들이군. 이 후락 장군도 정보부 창설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게요. 찾아 뵙고 도움을 요청하시게.”

“그렇잖아도 벌써 만나 뵙고 자료를 넘겨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급하니까, 이삼일 내로 함께 검토합시다. 최고회의법으로 근거 규정은 만들어져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중앙정보부는 내가 구상하는 국가 발전 전략 수립은 물론 향후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CIA와 영국의 MI, 소련의 정보기구처럼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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